시작은 평범했다. 당시에는 연구실 일이 바쁘지도 않았고 따로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물은 뒤 바로 다음날 와우를 시작하게 되었다.
시작은 성기사로 시작하였으나 며칠 후에 인간 대머리 흑인 남캐 마법사 박비범으로 노선을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와우를 하게 되었다. 이때가 3월 27일.
만렙을 찍는데 대충 열흘가량이 걸렸고 4월 12일 황혼의 요새에서 첫 레이드를 시작하게 되었다. 와우를 처음 시작하는 애를 열흘 만에 만렙을 찍어주고 일주일 만에 레이드를 보냈으니 당연히 플레이는 개판이었다. 처참한 플레이에 자극을 받아서 그 이후로는 동영상을 찍어가며 자신의 플레이를 분석하고 연구하였다.
당시 페이스북 기록을 보면 한 사람 딜러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나에게는 딜러가 잘 맞을 것이라며 추천해준 스토익의 말을 떠올려보면 역시 딜러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해야 한다. 꿈에서도 딜 연습을 하는 수준이었으니 나는 딜에 대한 욕심이 적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당시의 레이드 공격대는 주 2일, 1회에 2~3시간가량 게임을 하는 라이트 한 막공이었다. 진짜 시작은 4.2 패치로 열린 불의 땅과 함께였다. 7월 3일부터 길드에서 제대로 된 정공으로 불의 땅 레이드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첫 주에 일반을 전부 정리하고 2주차부터 하드 트라이를 시작하였다.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결국 최종적으로는 9월 14일 라그나로스 하드 서버 최초 킬을 달성할 수 있었다. 초반에는 이전과 비슷하게 주 2일 1회 5시간가량의 일정으로 진행되었고 막판에는 2일 정도의 추가 일정에 1회 트라이가 7시간가량 가는 꽤 하드한 일정을 소화했었다.
당시에 세계 149위, 국내 30위 정도의 순위였고 다음 4.3 패치 때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월 3일 용의 영혼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주 5일 일정에 1회 7시간의 상당히 하드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지만 꽤 빠른 진도를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네임드인 데스윙의 광기 직전의 데스윙의 등까지는 세계 39위 수준이었으니 꽤 빠른 진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인원 관리의 문제로 결국 레이드가 완전히 끝난 것은 2012년 2월 5일. 비록 서버 최초 하드 킬이었지만 세계 204위로 부진한 성적이었다.
2011년 한해를 와우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초반에는 라이트한 일정이었지만 자신의 무능함에 자극을 받아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고 막판에는 하드한 일정에 허덕이며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되돌아보면 와우를 통해 평소에 잘 알고 있었던 것의 확인과 새로운 경험이 많았던 한해였다.
나 자신의 실수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동영상을 찍어가며 분석을 했던 것과 외국 포럼의 온갖 수식이 난무하는 글을 암호 해독하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은 결국 남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수준의 딜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는 예전에 달인이 되기에서 썼던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이다. 결국 시간을 들여 연구하고 피드백을 통해 점진적인 개선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는 원래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재확인하는 기회였다고 볼 수 있다.
레이드를 하드하게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것이 있다면 시간 투자의 중요성이다. 어떤 기술을 완벽하게 습득하는 데에는 분명히 시간이 걸린다. 레이드에서 느낀 것은 시간을 쏟아부어서 얻어낸 결과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려운 네임드였던 데스윙의 등은 나중에 베스트 맴버로 트라이를 하면 한 번에 잡아내는 수준이 되었는데 이는 앞서 있었던 300여 회의 지옥의 트라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훨씬 더 쉬운 네임드에서는 이후에도 그 수준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매번 트라이를 하면서 느낀 신기한 경험이었는데 시간을 부어서 얻은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정말 절실하게 느꼈다.
그리고 인원 관리의 어려움이 마지막에 가장 크게 다가왔다. 하드한 일정에 끌려가는 사람들 모두를 컨트롤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실질적인 공대장을 맡고 있던 스토익이 가장 크게 느꼈을 테지만 인원 관리는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아직 이 부분은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앞으로 사람을 다룰 일이 생길 텐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아직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 원래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레이드를 보면서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다시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나의 2011년은 이제야 끝이 났다. 아마 앞으로 이렇게 하드하게 레이드를 하는 일은 없을 거다. 이제는 2012년 계획을 세울 때가 되었다.
Thank you Blizzard, for an awesome 2011.
But also, fuck you Blizzard, for my lost 2011.
I hope never to see you again.
2012년은 투기장이나 하죠.
디아블로3가 곧 나옵니다 호갱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