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의지는 끊임없이 인류를 괴롭혀온 철학적 주제 중 하나이다.
나는 인간에게 자유 의지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계가 결정론적이라면 우리는 태초에 있었던 입자들의 설정에 따라 미리 짜여진 영화를 관람하고 있을 뿐이다. 세계가 비결정적이라고 하더라도 우리가 사실상 경험하는 세계는 엄청나게 많은 입자들의 운동으로 이루어지고 사실상 결정론적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만약 비결정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하더라도 여러 가능한 분기 중 특정 분기를 임의의 확률에 따라 타고 가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멀티 엔딩의 영화를 지켜보는 상황이랄까?
기본적으로 사람의 '의지'라는 것이 개입해서 입자의 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을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시각을 아마도 hard incompatibilism이라고 하는 것 같다. 물론 이에 반박하는 많은 이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가진 이런 세계관을 무너뜨릴 정도로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반박을 보지는 못했다.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반칙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을 도입한 반박을 하기 때문이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At the price of mystery, you can have anything.'이라는 말을 했다. 자유 의지의 정의를 결정론적인 세계관과 배치되지 않도록 교묘하게 설정하거나 고전적인 몸과 마음이라는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도입하는 방법 등은 반칙처럼 느껴진다. 물론 더 그럴싸한 이론들도 있지만 그런 이론들의 설득에도 내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논리가 정교하지 못했거나 내가 이해를 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였겠지.
나는 우리가 느끼는 의식이 사실은 뇌라는 복잡한 구조체에서 움직이는 여러 분자 운동이 만들어낸 부수 효과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결정을 한다는 착각을 하지만 사실은 입자들의 움직임에 의해 이미 미래는 결정되어 있고 그저 이 과정의 부수적인 산물로 의식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시각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 같다. 이렇게 말을 해도 결국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면 더 무언가를 더 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내가 있다. 결국 모순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모순을 안고 산다 하더라도 결국 위의 세계관이 내가 믿는 세계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참 우울하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관객이 어떻게 느끼든 이미 만들어진 영화의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를 보는 것은 결국 그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이다. 만약 영화가 무척 재미있다면 영화의 끝까지 즐겁게 감상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영화가 지루하거나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떨까? 평범한 영화라면 그냥 영화 보는 것을 그만둘 것이다. 비슷한 시각에서 삶이 즐겁다면 나에게 자유 의지가 없더라도 즐겁게 생을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지루하거나 괴롭더라도 미래의 즐거움을 믿고 삶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그런데 만약 지금 당장 너무나도 삶이 괴롭다면 어떨까? 어차피 감상 이상의 의미가 없는 삶이라면 도중에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냥 드는 생각으로는 자살보다 나은 선택이 없어 보인다.
물론 위의 논의도 웃기는 일이다. 미래가 결정 되어 있다면 자살을 하고 하지 않고도 이미 결정되어 있을 테지. 내가 결정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뇌 속의 분자 운동의 부수 효과에 불과하고.
내가 자살을 아직 하지 않은 것은 자살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 거의 없었고, 그런 괴로움이 엄습할 때 나를 지탱해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게 언제까지 지속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러한 세계관은 자칫하면 굉장히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고자 노력해보았지만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나를 납득 시킬 수 없었다. 그렇기에 세계관이 우울하다고 하는 것이다.
완벽한 결정론에서는 세계관을 바꾸는 것도 결정되어 있으니 딱히 그대가 고민할 필요는 없는 것 같네. 어느 선택지로 가든 그 선택지로 가도록 정해진 것이니까. 근데 이렇게 보면 결정론이나 비결정론이나 1인칭 시점에서는 동일한 것 같아. 결정론이면 운명의 선택이고 비결정론이면 자신의 선택인데 그 차이는 우주 바깥에서밖에 인지할 수 없으니까.
난 재미없는 만화나 글을 봐도 한 번 시작한 건 무조건 끝까지 보게 되던데... 결말이 궁금해서? 그냥? 여튼 정확한 이유는 나도 댈 순 없지만 네 말대로라 한들 이런 방식은 어떠한지.
일념 // 저는 비결정적인 세계에서도 자유 의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어요. 물론 말씀하신대로 세계 자체를 내가 변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요.
bassist. // 재미없는 수준이 아니라 글을 읽을 때 물리적인 고통이 엄습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어차피 consequence를 모르는데 causality를 걱정하는 건 무의미하지. 영화를 예로 들었지만, 영화는 누군가 이미 만들어 놓은 것을 튼다는 것을 알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지. 아무도 미래를 모르는데. (심지어는 신조차도 모를지도.) 그렇다면 그냥 내가 의지한대로 세상이 바뀐다고 믿어도 다를게 없지 않을까?
그리고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우주 전체로 보면 닫힌 계라 결정적일지 모르지만 인간 개체 한사람으로 보면 완전히 열린 계라고 할 수 있지. 소위 역사 속 불굴의 의지를 가졌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 혼자서 막 생각해서 그런 의지를 가진 건 아니고 강렬한 트라우마가 남는 경험을 했다던지 뛰어난 선생을 만났다던지 하는 경우지.
kindone // 미래의 예측 가능성과 전혀 무관하게 나는 '의지'라는 것이 물리적인 세상에 영향을 주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어. 그렇기에 '시각을 바꾸면 이렇게 볼 수 있다'는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닌거야. 그렇게 시각을 바꿀 수 있다는 설득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하지. 그냥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내 의지로 세계가 변한다고 이야기를 하는건 나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 되지.
어떤 계기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교훈을 얻을 수도 아닐 수도. 그런데 (자유의지가 없다고 치더라도 최소한) 사람의 의식은 자신의 관찰자로서 그 계기가 어떻게 작용하게 되는지 결국 확인하게 될텐데 이것은 자신이 본질적으로 어떤 인간인지 확인하는 순간이지.
자기 자신이 결국 이것밖에 안되는 인간이었어 라고 확인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 그래서 발버둥을 치는 것이고.
어 아직 안자네 ㅋ
여튼 마무리하자면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에서 이런 발버둥은 의미가 있다고 '난' 생각함
사실 난 네 이론과 삶이 하나여야 한다는 믿음은 존중하고 싶고 난 내 생각을 얘기할뿐이지.
나는 이성적으로 납득을 했더라도 때로는 감성은 점혀 다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지. 밑에 세이버메트릭스 얘기도 나왔는데 나는 야구에서는 통계보다 멘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다면 자기 최면도 걸줄 알아야 한다라고.
내 논리는 여전히 정리중이야. 조금만 더 기다려.
재미있네ㅋ The implementation of the world가 궁금하단 말이지. 사실 나도 좀 궁금해 ㅋㅋ rand() 함수를 어떻게 구현해놓았는지.
일단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당장 모순에 빠지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미래는 결정론적이 아니라는 근거가 될 수는 없겠고. 예측할 수는 없지만 결정되어 있을 수는 있으니까.
이거랑 약간 비슷한 느낌인가. 괴델의 논증을 보면 참인데도 참임을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있는데. "이 명제는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
오.. 이거슨
저번에 고기먹으면서 들었던 형의 세계관이군요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