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만 해도 감정적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감정을 무척 중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바꾼 요소들은 많이 있겠지만 요즘 들어 특히 나 자신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
사람은 자신이 대하는 모든 것들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특히나 대하는 대상이 큰 의미를 지닌다면 더욱 그렇게 된다.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의 영향을 받고, 책을 접하면 그 책의 사상에 영향을 받고 심지어 게임을 해도 그 게임의 여러 요소의 영향을 받는다.
넷핵을 한창 할 때는 세상 모든 것이 넷핵의 규칙 -- 사실은 메타적인 규칙 -- 아래에서 동작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어느 정도 있지만, 요즘은 넷핵보다 나에게 더 크게 영향을 주는 어떤 주제가 있기에 그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는 거의 비판 없이 상대방을 빨아들였다. 마치 건조한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사람을 대하면 사람의 말투, 행동을 따라가고 책을 접하면 책이 주장하는 사상을 나의 것으로 삼았다. 지금은 그때 보다는 조금 더 메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해져서 나 자신의 본질이 통째로 휩쓸려가지 않은 채로 상대가 나에게 제안하는 것을 최대한 비판적으로 흡수하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사람이 점점 더 보수적으로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본질을 급격하게 변경하기가 어려워지니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주장들이 불편해질 수 있겠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말로 풀어놓은 것을 종종 모델링 하곤 한다. 위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방식의 모델링이 가능하다. 개인의 본질이 어떤 숫자로 표현된다면, 어린 시절에는 이 숫자가 작아서 외부의 요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고 변하게 된다. 하지만, 경험을 쌓아가면서 이러한 숫자의 크기가 커지고 그에 따라 외부적인 요인에 영향을 덜 받게 된다. 일종의 관성이랄까? 질량이 크기 때문에 굉장한 크기의 힘 --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 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한 쉽사리 변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다.
물론 위의 모델은 무척 조잡하다. 간단히 생각해봐도 개인의 본질이라는 것이 어떤 단일 숫자로 모델링 되는 것은 너무 단순하다. 단일 차원의 벡터가 아니라 다차원 벡터라고 모델링 하는 것이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인다. 나의 본질이 특정 방향으로는 큰 값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는 매우 작은 값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어떤 경험은 몇 가지 특정 차원의 값을 새로 갱신하는 연산이라고 보면, 우리는 이미 많이 경험한 경험에 의해서는 본질의 변화가 적겠지만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을 겪으면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요즘 내가 겪는 경험이 바로 그런 것일 테지.
이런 식으로 자신의 변화를 관찰하다 보면 사람이 중시하는 '가치'라는 것이 굉장히 불안정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주 좁은 특정 영역에서만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다면) 지을 것이고 나머지 분야에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래 위에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다양한 '가치'에 대해 강한 줏대를 갖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사실은 벡터의 크기만 보았을 때의 이야기이고 그 크기의 대부분은 특정 방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이런저런 가치의 갱신을 경험하면서 내가 별로 고려해보지 않은 가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건 이렇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라는 점이 조금 불쾌하다.
우리가 벡터의 모든 기저를 키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현실을 직시하고 내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에서 '위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답일 테지. 그래서 여러 분야의 고전을 읽고 공부도 하는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동시대의 거인들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애초에 굳이 찾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으니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글 참 두서없다.
개인을 다차원 벡터로 표현한게 재밌다 ㅋㅋ 예전에 "사회"를 다차원 벡터로 표현했던 기억이 나는군 흠..
모델링을 할 때는..
무엇을 추상화해서 날려버렸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고, 그냥 요즘 드는 생각.
- 꼭 그것만이 아니라, 요즘은 뭐든 앞면과 뒷면을 모두 보지 못한 상태에서는 판단을 유보하자랄까. 그나저나 책 많이 읽는다니. 부럽..다기보다는, 부끄럽;ㅋ
거인은 언젠가 알려질 사람은 알려지니까 굳이 지금 찾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고, 알려지면 그때가서 봐도 늦지 않다. 지금은 나와있는 고전에만 집중해도 될만큼 고전은 충분히 많다 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WILD ARTIST // 정작 사회를 벡터로 표현했던 건 뭐였는지 기억이 안나네 ㅋㅋ
waityet // 조엘 아저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어요. 추상화를 해도 결국 세세한 것도 다 알아야 추상화된 모델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책은 뭐 ㅋㅋㅋ 자랑할 수준은 아니라서
kek // 맞는말이지만 아무래도 동시대의 거인들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드는 안타까움인거지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