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지난 토요일 제주도 출장을 마치고 집에 와서 피곤을 풀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간만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들었다. 연세가 이미 아흔이 되셨고 몸이 썩 좋지도 않으셨으니 조만간 돌아가실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다. 당일에 동생이 외할아버지댁에 가서 함께 저녁도 먹고 '저 또 올게요.'라며 저녁 8시쯤 외할아버지댁을 나섰다고 하니 큰 징후가 없이 갑작스레 돌아가신 셈이다.

연락을 받고 큰 충격은 없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일이기도 했고 내가 원체 이런 일에 둔감하기도 한 것 같다. 빈소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번잡함을 피하고자 일부러 연락을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간만에 외가 쪽 식구들이 모두 모여 조촐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분위기였다.

빈소에 찾아가서 입관을 보며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데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에게는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느니 하는 이야기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외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몇 개 떠올리며 그걸로 끝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 처음 겪는 친척의 죽음인데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만 외할아버지가 정정하시던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이 약간 마음에 걸릴 뿐이다.

사람이 좋은 인생을 살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외할아버지께서는 당신이 좋은 인생을 사셨다고 생각하셨을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신지 이미 20년이 넘었고 그 이후를 꽤 외롭게 보내셨을 터이다. 장남과의 불화로 외가 쪽 사람들이 모두 모일 때 외삼촌을 볼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그런 마음의 응어리를 전부 푸셨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엄마는 어떤 기분일까? 이모들이 모두 눈물을 조금씩 보일 때 우리 엄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엄마도 속이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부모의 죽음은 언젠가는 찾아올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 아픔과 고통, 안타까움과 착잡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있을 후련함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언젠가 나도 부모님의 죽음을 겪게 될 터이다. 마음의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현실적인 준비는 또 어떠한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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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버 복구

서버 대규모 업데이트를 했는데 갖가지 문제가 생겨서 지난 며칠간 블로그가 내려가 있었다.

오래간만에 삽질하면서 리눅스 머신 하나 새로 장만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린은 머신 자체도 이미 4,5년은 됐고 내가 리눅스를 지금보다 훨씬 잘 모를 때 설정한 녀석이라 엉망인 부분이 많이 있다. 개인적으로 개발용으로 사용하던 나가토는 NIC가 나가버린 것 같은데, 덕분에 곤란한 일을 좀 겪게 되었다.

탈 없이 잘 쓸 수 있는 리눅스 머신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데 돈을 쓰기는 아쉽고... 계륵이다 진짜. 어차피 X는 거의 쓰지도 않을 것이고, 기본적인 개발용 서버로서의 기능과 블로그 호스팅 + IRC 접속 클라이언트의 역할만 해주면 되는데 남는 머신이 없다. 보통은 게임을 하기 위해 윈도우 머신을 하나 새로 사면서 원래 사용하던 윈도우 머신을 리눅스로 돌리는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맥북 에어를 사버려서 금전적인 여유도 없다.

괜히 징징글이 되어버렸다.

댓글이 안 달리고 있었엉

2011-08-17 20:45:23
kek :

결론은 맥북 에어 자랑

2011-08-18 13:33:41

급한대로 usb stick에 소스코드만 잔뜩 받아서 옮기는 것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했다.

2011-08-22 15: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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